퇴직 그 이후/인문

인터메초

이목집 2026. 2. 10. 04:21

인터메초

샐리 루니 저 · 허진 역 | 은행나무 | 2026.02.05 | 원제: INTERMEZZO

삶의 공백을 정면으로 바라보다

샐리 루니의 소설은 늘 사건보다 상태에 가까웠습니다. 이 작품 역시 커다란 전개보다, 말로 정의하기 어려운 시간의 결을 따라갑니다. Intermezzo는 음악에서 본 악장 사이에 흐르는 짧은 곡을 뜻합니다. 소설은 그 ‘사이의 시간’을 삶의 중심으로 가져옵니다.

우리는 인생을 성취와 실패, 시작과 끝으로 구분하지만 실제로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그 사이입니다. 이 소설은 그 구간을 서둘러 통과하지 않습니다. 오히려 충분히 머물게 합니다.

멈춤과 유예가 남기는 감정

인물들은 결정을 미루고, 관계를 규정하지 못하며,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습니다. 답답함이 먼저 찾아오지만, 그 감정 자체가 작품의 핵심입니다.

삶에는 결론이 나지 않는 시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.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지, 지금의 상태에 머물러도 되는지를 묻는 시간입니다. 이 소설은 그 질문을 해결하지 않은 채 하루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히 보여줍니다.

관계는 왜 늘 불완전한가

작품 속 관계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장치가 아닙니다. 사랑은 어긋나고, 대화는 절반쯤 실패하며, 이해는 완성되지 않습니다. 갈등은 정리되지 않고 형태만 바뀝니다.

그래서 독자는 묻게 됩니다. 함께 있음에도 왜 외로운지, 가까워질수록 왜 침묵이 늘어나는지. 이 질문들은 쉽게 답을 주지 않기에 오래 남습니다.

독자용 점검표: 머무름의 시간

점검 질문 스스로에게 던져보기
지금 내 삶에서 멈춰 있는 영역은 무엇인가 일, 관계, 감정 중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기록해 봅니다.
나는 이 시간을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는지 점검합니다.
결정을 미루는 이유는 두려움인가, 준비 부족인가 감정을 솔직하게 구분해 봅니다.
이 머무름이 내게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의미를 찾기보다 감각을 적어봅니다.
지금의 나는 스스로에게 충분히 관대했는가 자기 비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.

천천히 남는 소설

이 작품은 분명한 메시지를 주지 않습니다. 대신 잔향을 남깁니다. 지금 나는 인생의 어느 구간에 서 있는가, 그리고 이 시간이 정말로 잘못된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.

어쩌면 우리는 늘 다음 장면을 준비하느라 지금의 시간을 과소평가해 왔는지도 모릅니다.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간 역시, 삶의 일부입니다. 서둘러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이 있습니다.

지금이 멈춘 시간이 아니라,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면 어떨까요. 오늘의 머무름이 내일의 방향을 조용히 정돈해 줄지도 모릅니다.

— 이목집, 오늘의 기록